2009/06/18 12:53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와 결혼에 대한 가치관

<아내가 결혼했다>에 대한 두번째 글. 여자친구가 레포트 대신 써달래서 써준 기록 포스팅 땜빵 용으로 남겨둠.

작년 가을쯤에 개봉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현 시대의 남녀가 가지는 결혼관에 대한 주제로 하여 많은 이슈를 만들어 냈었다. 예로부터 결혼, 혼인은 인륜지대사라 부르며 하늘 아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경사로 여겨져 왔지만, 그 결혼관 역시 시대를 거치며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남자주인공 노덕훈은 대한민국의 약간의 소심한 면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성상으로, 여자주인공 주인아는 많은 남성들이 바라마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여성상으로 대변되어 나타난다.

노덕훈은 주인아를 첫 만남에서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던 소심한 남자이다. 노덕훈은 우연한 계기로 주인아와 재회하고 그것을 기회삼아 둘만의 관계를 다져가지만 주인아의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적 사랑에 의해 생겨나는 갈등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그녀를 독점하겠다는 마음만으로 결혼을 결심하기에 이르고 언뜻 그렇게 엔딩이 내려질 수도 있었지만, 주인아가 다른 남자와 또 결혼을 하겠다고 말하며 이들의 결혼 생활은 위기에 봉착한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일부일처제라는 현재의 보편적인 제도가 인류 전체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영원할 수도 없으며 다른 제도에 비해 타당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한 도덕률이나 민법 조항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역시 개인의 선택에 우선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 있어?’라는 주인아의 질문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평생을 같이할 자신의 반쪽, 반려자를 찾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에 성공하는 이들은 매우 드물뿐더러, 설사 성공한다 해도 그 한 사람에게만 얽매여 평생을 지내는 것이 과연 합당하다 말할 수 있을까?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주인아가 가진 결혼관은 폴리아모리(polyamory, 비독점 다자간 사랑)이다. 개인이 개인에 독점되지 않고 두 명 이상의 상대와 자유롭고 공개적인 사랑을 나누겠다는 것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폴리아모리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것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주인아의 폴리아모리와 노덕훈의 모노가미(monogamy, 일부일처제․단혼)의 만남과 갈등을 그려낼 뿐이다.

노덕훈은 현 시대의 일반적인 결혼관을 대표한다. 그런 노덕훈에게 주인아가 말하는 폴리아모리는 ‘대놓고 바람피우겠다.’ 이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인아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주인아와 한재경의 인터뷰 기사가 잡지에 실리고 회사 내에선 이혼과 두 집 살림에 대한 소문이 무성해져 정상적인 직장생활마저 힘들어진다. 주인아에게 아기가 생기지만 노덕훈은 자신의 아기인지 확신마저 하지 못한다.

영화에서는 역지사지와 관용의 자세를 강조하다가 끝끝내 노덕훈이 주인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말을 짓지만 실제 상황에서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노덕훈과 같은 상황이라면 결국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노덕훈의 상황에서는 논리조차 무용하다. 처음부터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나 극간에 있기에 주인아가 하는 말에 노덕훈의 논리로 공박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노가미와 폴리아모리. 질문은 다시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 있어?’로 돌아온다. 사회적․생물학적 통계와 근거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일부일처제가 합리적이지 못하며 신이 내린 완벽한 제도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현 시대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바람난 가족>, <아내가 결혼했다>와 같은 영화가 계속해서 개봉하고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차 <우리 결혼했어요>같이 가상 결혼을 다룬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것은 이에 대한 반증이라 볼 수 있다.

언젠가 폴리아모리를 사랑에 대한 자연스러운 방식 중 하나로 인식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서구에 비해 시리얼 모노가미(serial monogamy, 이혼이나 사별 후 재혼하는 식의 일부일처제의 연속)의 형태조차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는 한국 사회에서 폴리아모리는 너무나 먼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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